의견서-여성부(2003.11.20)


사      건 : 2001헌가9, 10 민법 제781조 제1항 본문 후단부분 위헌제청 (주심 : 김영일 재판관)

2001헌가11 내지 15 민법 제778조 위헌제청 (주심 : 김효종 재판관)

 

제청법원 : 서울지방법원 서부지원 및 북부지원




여성부

 


의견서


 

많은 심리사건에도 불구하고 호주제 폐지 관련 심판을 위하여 이처럼 변론의 기회를 마련해 주신 존경하는 윤영철 헌법재판소장님과 재판관님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세계적으로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현행 호주제는 양성평등과 개인의 존엄과 가치라는 헌법상 이념에 배치되며, 시대적 변화에 따라 다양화되고 있는 가족형태에 부응하지 못하므로 개선되어야 한다는 논의는 1958년 민법 제정 당시부터 계속되어 왔습니다.


오늘 이처럼 여성계에서 40년 이상 숙원사업으로 품어온 호주제 문제에 대하여 여성부장관으로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점을 매우 뜻 깊게 생각합니다.


지금부터 여성부가 지향하는 양성평등사회와 호주제 폐지의 의미, 호주제의 문제점 그리고 그간의 국민의식의 변화 등을 중심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여성부는 여성이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 미래 국가 성장의 튼튼한 기반이 되도록 하는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여성의 권익을 보장하여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여성인적자원을 개발․활용하여 국가발전에 적극 참여하도록 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여성부는 사회 각 분야에서 여성의 대표성을 높이고, 여성의 경제활동을 지원하며, 평등한 문화와 의식을 확산하는 등 다양한 정책과제를 수행하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는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여 양성평등한 민주적 가족제도를 구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처의 부가(夫家)입적, 자의 부가(父家)입적, 남계중심의 호주승계원리를 내용으로 하는 호주제는 가족관계를 종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전형적인 가부장제도로서 가족구성원간의 평등을 저해하는 기제로 작용하여 왔습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눈으로 보고, 듣고, 온 몸으로 느끼는 차별적인 가족문화는 아들에게는 여성을 지배하는 것을 당연한 권리로, 딸에게는 차별받는 것이 숙명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합니다.


또한 호주제는 출생, 혼인, 이․재혼 등 국민의 일상생활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비민주적인 가족관계를 형성하는데 크나큰 영향을 미칩니다.


예컨대 자녀는 출생하면 아버지의 가(家)에 입적하며 아버지의 성과 본을 따르고 아버지를 알 수 없는 경우에 한해서 어머니 가(家)에 입적하므로 아버지의 우월과 어머니의 경시를 온몸으로 익히며 자랍니다.


혼인의 경우에도 아내는 남편과 달리 호주인 남편의 가(家)나 시아버지의 가(家)에 들어가게 되어 친가에서는 출가외인이 되고 친가와 시가와의 불평등의 원인이 되며, 법상으로는 호주의 가족으로서 종속적으로 규정되어 혼인생활은 불평등하고 여성의 삶은 당당하지 못하게 됩니다.


또한 이혼 후 여성이 자녀에 대한 친권 및 양육권을 갖고 있다 해도 자녀들은 계속 아버지의 호적에 남아 있어야 하며 함께 사는 어머니와의 관계는 주민등록상 동거인으로 표시 될 뿐입니다.


재혼한 가정의 경우 어머니가 데리고 간 자녀는 새아버지와 성이 달라서, 또한 재혼한 남편의 자녀와 형제자매로 자라면서도 성이 달라서 학교 등 일상생활에서 많은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또한 남편은 아내의 경우와는 달리 혼인한 처 아닌 다른 여자와 사이에서 낳은 아이를 누구의 동의 없이도 호적에 등재시킬 수 있습니다.


예컨대 딸만 두고 결혼생활을 하던 중 남편이 뒤늦게 외도하여 아들을 얻은 뒤 사망한 경우,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남편의 어린 아들이 호적에 등재되어 그 가족의 호주가 되어버리는 불합리한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가족내 가부장제는 아내와 자녀에 대한 폭력으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남편이자 아버지가 가정의 주인이고 다스리는 자로서 아내와 자식에 대하여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우리사회에 만연한 가정폭력의 근간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호주제는 가족생활을 편리하게 도와주는 제도가 아니라 혼인생활의 단계마다 발목을 잡는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자녀의 어머니, 자녀, 친부, 계부 등 과연 누구를 위한 호주제입니까?


이는 헌법 제36조 1항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 는 규정을 침해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불평등한 관계로 이루어진 호주제는 가족생활에서뿐 아니라 우리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성차별적 기제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어릴때부터 가족내에서 차별을 경험하고 자란 사람들은 성장한 후에도 사회생활속의 각종 차별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즉 가족내의 종속적 관계는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경제활동 하는 것에 제약을 주며 남녀간의 임금격차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합니다.


이제는 호주인 남편에게도 처와 자녀를 혼자 부양하는 굴레를 벗겨주어야 합니다. 그동안 남성은 너무 과중한 부담을 져 왔다고 하겠습니다.


40대 남성의 사망률이 세계 1위라는 현실을 바로 볼 때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매우 낮으며 특히 대졸여성의 경제활동참가는 OECD회원국 중 최하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1인당 국민소득 1만불의 경제수준에서 2만불 이상의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높은 교육수준을 가진 여성인력의 경제활동이 더욱 확대되어야 합니다.


직장내 남녀차별과 성희롱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으며 이처럼 여성을 대등한 동료로서 대하지 못하고 희롱이나 비하의 대상으로 보게 되는 의식과 행태도 남성중심의 가부장제에서 크게 기인한다고 하겠습니다.


여성이 혼인하면 남편의 가에 입적하는 종속적 관계로 규정하는 호주제는 여성이 정치분야에 진출하는 것도 가로막는 장애가 되고 있습니다.


남성에게 귀속된 존재로 각인된 여성이 남성과 함께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사회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호주제가 폐지되어 평등한 가족관계가 형성되면 머지않아 여성의 정치참여도 활발하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또한 남성위주의 호주승계는 ‘대를 잇기 위해서는 아들이 꼭 있어야한다’는 남아선호사상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지난해 여성의 출산율은 1.17명으로 대부분의 가정이 1~2명의 자녀만 갖고 있으며 특히 딸하고만 사는 가구 수는 우리나라 전체 가구 수의 약 16%인 225만 가구에 이르고 있는 상황에서 각 가정마다 아들이 꼭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이들과 우리 모두에게 큰 고통을 주고 있습니다.


남아선호사상은 태아 성감별에 의한 여아낙태와 출생성비불균형을 초래합니다. 지난해 출생성비는 여아 100명당 남아 110명으로 정상적인 출생성비인 남아 105명을 크게 초과하며 특히 셋째아이의 경우 남아 140명이 넘고 있어 이로 인하여 남자아이들이 장차 신부감을 얻기 어려운 문제가 발생하는 등 사회문제가 심각한 실정입니다.


호주제가 폐지되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중 하나는 아시는 바 대로 현행 민법상 호주제는 봉건적 전통과 일제 잔재가 결합되어 나타난 것이라 하겠습니다.


‘호주제가 우리 민족 고유의 가족제도'라는 전제 하에 '호주제도는 헌법 제9조에서 정하고 있는 국가가 계승하도록 노력하여야 하는 전통이고 미풍양속'이라는 주장이 있으나, 많은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여 밝혀진 바와 같이 호주제가 고유 관습이 아니라 일제시대에 이식된 제도이며 이 시대의 사회, 경제적 환경에 적절하지도 않는 봉건적 잔재로서 우리가 계승, 발전시켜야 할 전통도, 미풍양속도 아니라 할 것입니다.


중국 종법제의 영향으로 조상제사의 주재자로서의 남계혈통계승의 관념인 종래의 호주에다 추상적․관념적 집단으로서의 일본식 가(家)제도가 결합한 것이 바로 현행 호주제입니다.


1909년에 제정된 민적법에 의해 일제가 이식한 호주제도는 이를 전해준 일본마저 이미 1948년 민법개정으로 폐지한 상태입니다.

 

헌법 제9조의 정신에 따라 우리가 진정으로 계승‧발전시켜야 할 전통문화는 '이 시대의 제반 사회‧경제적 환경에 맞고 또 오늘날에 있어서도 보편타당한 전통윤리 내지 도덕관념이라야 할 것'이므로, 가족구성원들 간의 합리적인 이유 없는 차별을 규정하고 있는 호주제도는 헌법 전문에 명시되어 있는 '타파되어야 할 사회적 폐습'에 불과하다 할 것입니다.


설령 호주제의 목적 가운데 일부가 그 정당성을 인정받는다 하더라도, 이는 관습으로 유지할 영역이지 법으로 강제할 제도가 아닙니다.

 

족보나 제사문제가 관습의 영역에서 아무런 문제없이 그 문화를 이어가고 있듯이 관습, 도덕, 윤리의 영역에서 교육을 통하여 유지, 발전되어야 하며, 이를 법률로서 강제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고 봅니다.


현행법상의 호주가 가진 의미가 이러할진대, ‘관념상의 개념에 불과하고 헌법에도 배치되는 호주제를 굳이 민법에서 규정할 실익이 있을지’에 대하여, 이 시점에서 다시 한번 냉정히 검토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호주제에 대한 국민들의 의식도 많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호주제에 대한 국민들의 의식도 상당한 변화가 있어 왔습니다. 지난 2000년 한국여성개발원의 국민의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27%만이 폐지를 지지했으나, 그 다음해인 2001년 서울대 법학연구소에서 전국 15개 시도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46%가 폐지 또는 수정을 요구하였으며 같은 해 국회의원 113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52.2%의 국회의원들이 현행 호주제를 폐지하거나 수정해야 한다고 응답하였습니다.


2003년 4~5월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서 전국 9,534명 대상의 설문조사에서는 66.2%가 폐지를 주장하였으며, 지난 8월 인터넷사이트 Daum과 Empas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각각 70.2%, 66.3%가 호주제 폐지를 지지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 5월 한 일간지의 조사에서는 호주제를 이대로 유지하자는 의견이 20%에 불과하였는 바, 이는 결국 호주제에 대한 국민들의 의식이 많이 바뀌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또한 최근 주요 일간지 등 언론매체들은 사설을 통하여 시대요구에 맞춰 민법의 호주제 규정을 조속히 폐지할 것과 새로운 가족관계의 미풍양속을 만들어 갈 것을 촉구 하고 있습니다.


또한 개인의 존엄과 행복추구권, 남녀평등을 저해하는 현행 호주제도와 같은 남성우위의 가족제도는 폐지되어가고 있는 것이 세계적 추세이며,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 UN 인권위원회 등에서 1999년과 2001년 두 차례에 걸쳐 우리나라에 호주제도의 철폐를 권고하기까지 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 이상 호주제도를 유지할 국제적인 명분도 위상도 없다 할 것입니다.


민법상 호주제도가 많은 가족에게 고통과 불편을 주고 있으며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과 평등한 혼인과 가족생활을 정하고 있는 헌법에 위배된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최근 정부에서는 호주와 관련된 규정을 삭제하고 자녀의 성 결정에 있어 부성강제조항을 완화하는 내용 등으로 민법개정안을 마련하고 국회에 제출하였습니다.


민법의 개정을 통하여 호주제 대신 새로운 가족제도가 마련됨으로써 양성평등과 인간의 존엄과 가치라는 헌법 이념에 부합하는 합리적인 가족제도가 구현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21세기는 가족과 직장, 사회와 국가의 모든 부문에서 여성과 남성이 조화로운 관계를 이루는 일이 요구됩니다.


우리는 차별이 사라진 평등사회, 인권이 존중되는 민주사회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호주제가 과연 이 시대의 제반 사회‧경제적 환경에 부응하고 또 오늘날에 있어서도 보편타당한 전통윤리나 도덕관념인지, 다시 한번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시대의 가치판단을 거쳐야 할 것입니다.


호주제로 대변되는 기존 가족질서가 민주주의적‧수평적 사고방식과 자기결정권에 대한 강력한 자각 등 가족구성원들의 의식변화를 수용하지 못하여 가족구성원 내부의 갈등을 증폭시킴으로써 오히려 가족의 해체를 촉진시키고 여러가지사회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그동안 민법의 친족․상속 편은 가족생활관계의 급속한 변화와 시대적 요청을 조화롭게 수용하여 양성평등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수차에 걸쳐 개정되었고, 이제 호주제의 폐지는 가족생활에 있어 헌법이념을 구현하는 마지막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가족을 지키는 것은 호주제가 아니라 가족간 그리고 우리 모두의 사랑과 관심입니다.”


감사합니다.